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문단 편집) === 긍정적 평가 === [[파일:external/t1.daumcdn.net/20160302142303148icbm.jpg]] 위의 만평은 독자들에 의해서 아래와 같이 합성되기도 했다.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60302134241283790_99_20160302142204.jpg|type=w430]] 즉 야당 의원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판세를 바꾸었다는 것. 이후에 있었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촛불 혁명]], [[제19대 대통령 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등을 보면 그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 '''"국회도 일할 때가 있네"''' '''"이렇게만 열심히 하면, 국민들이 그렇게 국회를 지탄하지는 않았을 것."''' - [[썰전]] [* 사실, 국회는 매일 각 분야별 위원회에서 여야간의 회의가 치열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이다. 다만, 편향된 언론 환경 때문에 실상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시민들이 모를 뿐이다.] >'''역사는 라이브로 쓰이고 있다.''' -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여야는 이제 국회선진화법 제정이 시급하다. 우선 무제한으로 허용될 수 있는 직권상정의 요건을 극히 엄격하게 제한하고 엄중한 경우에만 허용하도록 할 것이고, 그 대신 식물국회를 막기 위하여 자동상정제와 신속처리제도를 도입하여 국회의 효율성을 높이고, 여야 대치상황을 피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혹시라도 소홀히 될 수 있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보호한다는 원칙 아래 필리버스터와 같은 의사지원제도를 허용한다든지 하여''' 여론의 추이를 볼 수 있게 하고 협상의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보장하는 동시에, 보다 엄격한 단순 과반수 51%가 아닌 60% 정도의 가중된 다수결제도 또한 검토하여서 이를 최종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최종의결에 이르도록 제도적으로 확보해야 할 것이다. > >2011년 11월 24일 최고위원회의 주요내용 중 '''황우여'''(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 >'''필리버스터 민주주의의 시간''' - [[시사인]] 442호 / 2016년 03월 05일 * 참여하는 의원들의 연설에서 ''현대사 강의를 듣는 것 같다."라는 의견이 많았다.[[https://twitter.com/rokanarutari/status/702701744103378944|#]] * 토론에 참여한 의원들의 전공분야 및 국회에 입성하기 전 갖고 있었던 각자의 본업들이 다양하고 야당 의원들 각자의 인생들도 파란만장한 경우가 많아서 필리버스터의 주제에 관련된 발언만 해야 하는데도 그 안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소스들이 나왔다. 헌법, 인권, 기본권, 정치, 언론, 근현대사, 문학, 경제, 관련 문화예술 작품 등에 대한 질 높은 정보들이 아주 쏟아졌기 때문에 이 필리버스터를 싸그리 모아서 교육용 DVD로 출시해도 좋겠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 필리버스터 주제로만 이야기해도 엄청나게 다양한 소스가 나온다는 것이다. 가장 쟁점이 된 "인권이 얼마나 광범위한 가치를 가졌는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대중적으로 막연하게만 느끼기 쉬운 인권의 가치, 그리고 인권을 강력하게 보장하는 헌법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 야당, 즉 민주계 국회의원들에 대한 인식 전환이 되기 시작했다. 국회선진화법 이전까지의 국회는 원래 뭐가 안 되면 날치기, 몸싸움부터 하고 보던 국K-1들이 다수였다. 때문에 "야당 것들? 그동안 데모만 하다가 한자리 한 놈들?"이라는 게 중도층의 민주계 국회의원에 대한 인식이었는데 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야당 의원들이 정중하게 단상에 올라가서 테러방지법 반대는 물론이고 당시의 정국과 국가 현안에 대한 사실과 의견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풀어 쉬지 않고 발언하는 장면이 생중계되면서 "그동안 순 데모만하다 온 양반인즐 알았더니 의외로 달변에 논리정연하네?"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낀 사람이 많았다. 사실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언론 때문에 잘 모를 뿐 평소에도 국정감사나 국정조사를 보면 매번 일어나는 일이다. 1시간 동안 떠벌리기도 힘든 상황에서 5시간에서 10시간 이상, 24시간 풀타임으로, 그것도 미국처럼 토론 중 [[성경]]책 읽기 같은 논점일탈도 없이 릴레이 스피치가 가능하다는 것은 일을 아예 안 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얘기다. 당장 공부를 예시로 들어도 들을 때는 다 알고 있는 내용 같아도 막상 남들 앞에서 스피치를 직접 해 보면 "내가 이렇게 몰랐구나?"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탐구영역이나 전공과목에서 주제를 하나 정해서 1시간 동안 혼자서 쉬지 않고 떠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즉, 장시간 연단에 올라 필리버스터링을 하던 야권의 의원들은 아무리 따로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인권이나 현대사의 흐름, 세계 각국의 관련 법을 주제로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유식한 전문가라는 인식을 중도층에게 보여주었다. 이 덕에 중도층, 그리고 다소 정치 혐오, 내 표가 고작 너네들 같은 이권만 탐하는 무식무례한 국K-1 밥벌이에 허비된다고 절망하던 사람들에게 야당에 대한 이미지 제고, 개선효과를 적잖게 선사했다. * 국회의원들뿐만 아니라 보좌관이나 속기사들도 만만치않게 고생했다. 특히, 속기사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말이 인터넷으로 돌자마자 의원들이 연설을 마칠 즈음에 속기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끝을 맺었다. * 결정적으로 그동안 한국 시민들이 세계 3대 격투기 단체 중 하나로 [[국K-1]]을 꼽을 만큼 오명으로 뒤덮였던 국회에서 그 조롱을 더 이상 하기 민망할 만큼 차분하고 정갈하게 저항하는 야당 의원들의 모습은 국민들의 인식 전환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당장 날으는 강기정, 폭력의원 강기정, 돌아온 탕아라고 불릴 만큼 강경파&행동파였던 [[강기정]] 의원이 [[홀리버스터]] 강기정 목사라고 불릴 정도로 말이었다. 이러한 야당 의원들의 모습은 그의 지지자든 반대자든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 이로 인해 평소에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나무위키에서 내용이 거의 없거나 아예 문서도 없던 국회의원들의 정보가 많이 추가되었으며 관련 문서들도 항목이 추가되고 갱신되었다.[*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는 방침상 정치인은 [[작성금지]]였다 보니 문서 작성의 활성화가 늦을 수밖에 없었던 점도 한 몫 한다.] * 한국 언론들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으며 동시에 뉴미디어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JTBC]]를 제외한 [[종합편성채널]]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상파]]에서마저 [[필리버스터]]와 관련된 보도를 자제하던 편파적인 모습과 그에 비해 폭발적이고 유동적으로 필리버스터 관련 소식이 흐르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대비가 상징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2282049505&code=990100|#]] * 야권 정치인들의 재발견이 되기 시작했다. 바쁘고 사고가 많은 현대 사회의 특성상 국회에서의 다양한 활동들도 지면의 한계로 짧은 단신으로나 처리되던 성향이 있다. 특히 인지도가 낮은 초-재선 의원들은 언론의 관심이 더더욱 떨어진다. SNS 등으로 소통에 나서지만 인지도가 낮으면 그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연설이 생중계되면서 이들의 진솔하고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장점.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스러운 [[박근혜 화법]]은 단 2~3줄짜리 문장도 당최 알아먹을 수 없는 데 반해 [[정청래]], [[은수미]], [[김광진(정치인)|김광진]], [[서기호]], [[진선미]] 의원들의 발언은 "5시간이 넘어가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실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전국에 생중계되는 환경에서 자신의 소신을 시간제한도 없이 자세하게 밝힐 수 있는 기회는 정말 흔치 않다. * 또 다른 [[노무현]]과 같은 야권 스타의 탄생을 기대하는 반응도 나왔다. 평범한 야당 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국구로 이름을 알린 것은 [[제5공화국 청문회]]에서 보여준 소신 있는 태도였다. 당시 그는 차분하면서도 치밀한 질의를 통해 불리한 증언을 회피하거나 잡아떼는 [[청문회]]의 증인들이 꼼짝 못하게 당시의 사건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뛰어난 능력을 대중들에게 인식시켰다. 이는 이후 그의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노무현 당시 의원이 가장 주목받은 청문회 스타였으나 당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던 사람들로 노무현 이외에도 [[김광일]] 등등 몇몇 인물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노무현]]과 [[김광일]]은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면서 대립했다.] 당시 노무현의 정치적인 리더쉽과 스타성을 가장 먼저 주목한 인물이 [[조영래]] 변호사였다. 그리고 주목과 동시에 철저한 견제에 나선 것은 다름아닌 [[조선일보]]... 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김광진(정치인)|김광진]], [[은수미]], [[정청래]], [[진선미]], [[이학영]] 의원 등이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 정청래 의원은 워낙 당대포를 자처할 정도로 강경한 데다 달변가로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원래부터 유명했지만 이 기회를 계기로 일반 국민들에게 그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김광진 의원은 준비 시간이 부족한데도 필리버스터 개시를 위해 스스로 총대를 매고 선봉으로 나서서 동료 의원들의 준비를 도왔다는 점, 그럼에도 논리정연하고 정제된 발언을 5시간이 훨씬 넘도록 이어나간 점 덕분에 차세대 리더로 인정받을 만한 커리어를 쌓았으며 진선미 의원도 팟캐스트 스타를 넘어서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 그렇지만 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그 존재감을 가장 드러낸 것은 단연 은수미 의원이라고 할 수 있다. 19대 국회의 초선 비례의원이었음에도 같은 시기에 등원한 동기엔 김광진 의원의 의견에 '''"아마도 우리가 질 겁니다. 하지만, 우리부터 지는 게 낫지, 어떻게 국민더러 지라고 합니까?"'''라는 말을 하고 동참하면서 필리버스터 개시를 성사시켰고 차분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이 담긴 발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감동을 줄 만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또 발언 과정에서 은수미 의원의 처절하고 파란만장했던 삶이 다시 재조명되기도 했다.[* 스스로의 자각을 계기로 산업현장으로 뛰어들어 직접 위장취업하면서 실상을 깨닫고 나중에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안기부에 잡혀서 극심한 고문을 당했으며 [[강릉교도소]]에서 6년간 복역했다. 결정적으로 고문 후유증 때문에 두 번의 큰 수술을 한 데다 유산까지 했고 현재도 불임으로 알려져 있다.] 발언을 마치고 병원에서 수액을 맞으면서 휴식을 취한 다음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초청돼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 깐깐하고 까칠한 김어준이 감동했고 초청된 게스트 최초로 입장과 퇴장할 때 방청객과 진행자 모두 기립박수를 칠 정도였다. *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이 사건 이후 "이젠 야당 의원들도 필사적으로 국민의 소리를 대변할 수 있구나"라는 이미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신뢰도와 지지율이 늘어나면서 야당 분열로 인한 대패를 예상하였던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 승리를 통해 1당[* 물론 이내 새누리당에서 탈당했던 무소속 의원들이 복당하여 다시 새누리당이 1당이 되었지만 총선 자체에서는 분명 더불어민주당이 1당이었다. 12월에 새누리당 분열 사태가 터져 다시 더불어민주당이 1당이 되었다.]이 되는 것도 모자라 대구에서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후보가 당선[* [[김부겸]]과 [[홍의락]]. 단 홍의락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직후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한동안 야권 성향의 무소속 의원으로 있었다가 이후 2017년 대선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였다. ]되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부산과 경남에서도 9명이라는 놀라운 수의 당선자를 배출하는 쾌거를 이뤘고 국민의당도 호남 싹쓸이와 비례대표 득표율 2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면서 40석에 가까운 의석을 얻으면서 당당한 원내 교섭단체 정당이 되는 기록을 세워 전체적으로 야당이 대승하게 되어 이후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반년만에 터진 한국 역사상 최악의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역대급 사건에서도 탄핵 가결[* 정말 총선에서 예상처럼 새누리당이 180석을 받았다면 탄핵 발의 자체도 불가능했을 수 있다. 탄핵 발의 직후 새누리당은 친박뿐만 아니라 비박마저 탄핵에 소극적인 정치인들이 나오는 등 오락가락하던 상황이었으니 발의에 소극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탄핵 가결은 국민의 거센 여론과 과반이 넘는 170여명의 야권 국회의원 연대라는 압박으로 성공했던 것이다.]을 성공시키는 등의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불러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